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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하나님과 동행하는 스토리를 만들라
글쓴이 관리자 E-mail pastorlove@hanmail.net 번호 256
날짜 2020-12-26 조회수 439

하나님과 동행하는 스토리를 만들라

글쓴이 박영민목사
낭독자 허강원간사

마지막때를 알고나서 휴거의 예표인 예녹의 삶을 들여다 보았습니다.
그가 하나님께 데려감을 당한 조건은 어떤 스팩이 아닌 하나님과 동행한 스토리였습니다.

창세기 5장 21-24절을 보십시오.
에녹은 육십오 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 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그는 삼백육십오 세를 살았더라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창세기 5장 22절에 나오는 동행(going together)이란 단어의 히브리 원어 '할라크'는 문자적인 뜻은 '걷다'(레 11:42), '산책하다'(삼하 11:2)는 뜻이나 여기서는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인격적 교제'를 나누는 것을 의미합니다.

므두셀라는 죽음을 보지 않고 승천한 에녹의 아들입니다.
‘므두셀라’는 ‘그가 죽으면 세상에 끝이 온다’는 뜻입니다. 므두셀라가 출생할 무렵, 에녹에게 그 자녀의 운명과 관련된 하나님의 특별한 계시가 있었음이 분명합니다.
그는 그 계시를 받은후 300년동안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다가 들림을 받습니다.

므두셀라는 문자적으로 ‘사람’의 뜻을 가진 ‘마트’와 ‘창, 무기’라는 뜻을 가진 ‘쉘라흐’의 합성어로, 무기를 든 사람’ 또는 ‘창을 던지는 사람’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그 어원을 따라 살펴보면 ‘죽다, 죽이다’라는 뜻의 ‘무트’와 ‘보내다, 내어 쫓다’라는 뜻의 ‘샬라흐’의 합성어로, ‘그가 죽으면 (끝이) 보내진다’라는 뜻으로 풀이할 수 있습니다.

므두셀라의 이러한 뜻과 관련하여 성경학자 제임스 보이스(James M. Boice)는, “에녹은 므두셀라가 태어날 때 지구에 홍수로 올 멸망에 대한 계시를 받았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아들이 죽으면 홍수가 임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명백한 지시였든, 자신의 믿음의 행위였든, 에녹은 그의 아들을 므두셀라(‘그가 죽으면, 그것이 오리라’)로 지었다. 므두셀라가 살아 있는 동안은 홍수를 보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가 죽으면 홍수가 온다는 것이다”라고 설명하였습니다.

어느 부모가 사랑하는 자녀의 이름을 지을 때 이렇듯 섬뜩한 종말적 의미를 지닌 이름을 부여하고 싶겠습니까? 그럼에도 에녹은 다가올 홍수 심판에 관한 메시지를 전하고, 종말의 신앙을 준비하기 위하여 아들의 이름을 말씀을 좇아 그렇게 지었습니다. 마침내 예고되었던 홍수 심판이 아담 이후 1656년, 노아 600세 2월 17일에 일어났습니다. 이 때는 므두셀라가 969세를 향수하고 죽은 해와 정확하게 일치합니다.(창 5:27, 7:11).

이처럼 죄악이 관영한 가운데에서도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며 그의 뜻을 좇아 산 자로는 또한 노아가 있는데 그 역시 '하나님과 동행한 자'라 칭함받았습니다.
창세기 6장 9절을 보십시오.
“이것이 노아의 족보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라고 말씀합니다.
노아 또한 심판에서 구원 받은 이유는 하나님과 동행 스토리를 가졌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그래야 합니다.
그려려면, 모세처럼 동행을 간구하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출애굽기 34장 9절을 보십시오.
“모세는 이르되 주여 내가 주께 은총을 입었거든 원하건대 주는 우리와 동행하옵소서”

창세기 5장 24절을 새번역으로 보면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하다가 사라졌다.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신 것이다.”
마지막때에 살아가는 우리들이 주목해 보아야 할 말씀입니다.

또하나의 말씀을 소개합니다.
이 말씀은 무엇보다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동행을 원하시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미가서 6장 8절을 보십시오.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그런데 사람들은 하나님과 동행하지 않으려하고 세상의 세계관과 음녀가 주는 포도주에 취하여 배도하는 세력들과 동행을 기뻐하며 멸망의 길로 가고 있습니다.

아모스 3장 3절을 보십시오.
“두 사람이 뜻이 같지 않은데 어찌 동행하겠으며.”라고 말씀합니다.

그들과 단지 평화를 위해 동행한 것 뿐이라고 궁색한 변명만 내 놓는 것을 보면 큰 슬픔입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약사가 되어 근무하는 조카가 작은 아버지인 나에게 청하여 결혼주례를 섰습니다.
축하객들의 절반은 제가 알고 있는 친척들이었는데도 주례사에 대한 반응이 뜨거웠고 하객들은 순서마다 우례와 같은 박수를 쳐주었습니다.
결혼 순서가 무르익은후 축가 순서가 되었습니다
예쁘게 차려입은 자매가 축가하러 나왔습니다.
연애인인줄 알았습니다.
근데 노래 실력이 신통치 않았습니다.
속으로, “내가 아는 가수를 데리고 올걸 그랬나? 아니, 그레이스 사모를 세울걸... ”그런 생각을 하면서 축가를 들었습니다.
축가를 마친 자매가 눈물을 글성거리며, “친구야 행복하게 잘살기를 기도할게”라고 말하며 들어 갔습니다.
신부와 식사를 하는데 그 친구 얘기를 하는겁니다.
초등학교 중학교때부터 단짝으로 늘 동행했는데 이친구는 미국에 가서 미국인과 결혼했고 어린나이에 연봉이 엄청난 회사에 스카웃 제의를 받고 근무중이라고 했습니다.
300만원 보낼까 아니면 우리 부부가 비행기타고 가서 축하해줄까?라고 묻더랍니다.
신부가 “그냥 와서 축하해줘”라고 대답했고
그녀는 비행기를 타고 먼거리는 날아와 축하해 주었다는 것입니다.
그녀의 스팩 얘기를 들을 때는 없던 감동이 그 먼거리를 날아와 축하해준 친구와 우정의 동행 스토리를 듣는 순간 축가했던 그녀와 돈보다는 친구와 동행을 구했던 신부가 너무 빛나고, 고맙고, 멋지고, 아름답고, 온갖 형용사을 붙여도 부족함이 없어지는 감동이 밀려 왔습니다.

스토리를 만들어 가는 사람은 어떤 실패와 고통과 절망 가운데도 하나님과 동행하며 스토리를 만들어가며 기뻐할 수 있습니다.
찬송시를 쓴 시인은 이렇게 노래합니다.

♩ 높은 산이 거친 들이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

다니엘이 정한 뜻 즉 마음에 한 결정은, 하나님과 스토리를 쌓아가기로 결정했던 것입니다.
풀무불에 타 죽었어도, 사자에게 갈기갈기 찢겨 죽었어도, 다니엘은 배도하지 않고 하나님과 동행을 결정한 것입니다.
끝에 잘되는 이야기로 다니엘을 모독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를 고백했던게 다니엘이였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조그만한 교회가 하나님과 놀라운 스토리를 쌓아가고 있다면, 세밀한 주님의 음성을 들으며 동행하고 있다면 그 교회는 그 어떤 대형교회보다 하나님께 기쁨을 드리며 사랑받는 교회가 될 것입니다.

잔치에 가나의 혼인잔치에 기적의 포도주를 마실때에 ‘물 떠온 하인만 알더라’라고 하신 것처럼 그 사랑을 알고 느끼는 동행의 삶을 펴치는 여러분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이제 우리는 시대의 끝에 도착했습니다.
그날이 언제인지는 아무도 모르나 주님께서 말씀하신 언약이 이 시대에 징조로 성취되는 것을 보면 때는 짐작 할 수 있습니다.
죄악의 세력들과의 동행을 거절하고 도망해야 합니다.
피신할 기회가 주어졌지만 소돔이 여자의 마음에 찌꺼기로 남아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한 롯의 아내의 전철을 밟지 마십시오.
세상의 썩어질 것들에 집착하지 말고 동행을 선택하십시오.
아가 2장 8절을 보십시오.
“나의 사랑하는 자의 목소리로구나 보라 그가 산에서 달리고 작은 산을 빨리 넘어 오는구나.”

에녹을 하늘로 데려가신 그분이 지금 예루살렘 산을 넘어 달려오십니다.
예슈아, 예슈아, 그분이 오십니다.
예루살렘의 산을 뛰어 넘어오시는 이시여
주님을 앙모하는 나는 당신과 함께 춤을 추기 위해 기다리는 당신의 신부입니다.
그 이름을 찬양하며 그 영광을 노래합니다

마라나타!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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