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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예언을 분별하는 성경적 안목을 가져라.
글쓴이 관리자 E-mail pastorlove@hanmail.net 번호 220
날짜 2016-03-13 조회수 1333

예언을 분별하는 성경적 안목을 가져라.

1) 성경적 개념의 왜곡
가장 우려가 되는 것은 다름 아닌 선지자와 예언과 관련된 개념의 왜곡입니다. 그 같은 왜곡은 무속적 개념의 혼용과 그에 따른 행위들이 기독교의 성경에 입각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에 더욱 혼란을 야기하고 있습니다. 현재 우리 주변에서는 어떤 것이라도 ‘성경에 있으니‘ 혹은 ‘성경적‘이라는 권위를 가지고 나가면 성경이 가지고 있는 권위 자체 때문에라도 그것을 비판할 수 없는 것으로 사람들은 간주합니다.
바로 이점을 이용하여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이 무비판적인 사람들을 현혹시켜 왔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로서 과거 92년 10월 28일 시한부종말설을 주장한 바 있는 다미선교회의 예수님의 재림과 관련된 예언이었습니다. 그 예언을 주장하는 사람을 지금까지 감추어졌던 것을 밝혀주는 선지자라고 하면서, 교묘하게 성경의 일부분을 그럴듯하게 포장하여 전문적인 지식이 없기 때문에 그 왜곡시킨 내용을 비판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다가갔습니다. 우리 주변에서 수없이 많이 보는 이단들도 반드시 자신들의 주장을 성경에서 인용하고 있음을 우리는 유의 깊게 관찰하여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 예언 홍수 시대에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이를테면 18대 대통령 예언, 2012 예언, 한국의 미래 예언, 충격 대 예언, 한반도 전쟁 예언, 한국 예언, 지구 종말 예언, 북한 붕괴 예언, 개벽 예언가, 예언 기도, 마더 쉽톤 지구멸망 예언, 김정섭 총선 예언, 김정일 사망 예언, 올림픽 축구 예언, 북한 예언, 김정일 예언, 존 티토 환생 대선 예언, 등 수많은 괴담들이 인터넷 상에 떠돌고 심지어는 개인의 운명과 앞날을 점치는 무속인 들의 수는 상상을 초월합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있는 예언이란 도대체 무엇일까요? 기독교에도 예언이 있는데 세인들이 말하는 예언과 성경에서 말하는 예언이 과연 같은 것일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기독교에서 말하는 예언은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예언과는 전혀 다른 개념입니다.

2) 예언(豫言)과 예언(預言)의 혼동
사전을 보면 한자가 다른 예언(豫言)과 예언(預言)이라는 두 단어가 있습니다. 예언(豫言)은 미리 예(豫)자를 써서 앞으로 일어날 일을 미리 알거나 짐작하여 말하는 것이라고 했고, 예언(預言)은 맡길 예(預)자를 써서 기독교에서 신탁(信託)을 받은 사람이 하나님의 말을 직접 듣고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일. 또는 그런 말이라고 설명해 놓았습니다. 예컨데 예금(預金)이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은행에 돈을 맡기면(예금:預金) 은행은 이 돈을 필요한 사람에게 빌려줍니다.

예언(預言)은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선지자가 그 말씀을 백성에게 전해주는 역할을 합니다. 모세가 이런 예언(預言)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전하였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국한문 성경에는 예언(豫言)이라는 단어를 쓰고 있습니다. 그러나 일본어 성경에는 예언(預言)이라는 단어를 쓰고 있습니다. 하여간 기독교에서 예언(預言)은 구약시대에 선지자들이 하나님의 계시(啓示)를 받아 이를 백성들에게 대언(代言)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신약시대에 와서는 목회자가 성경 말씀을 통해 성령의 영감을 받아 깨달은 말씀을 증명하는 것을 설교라고 합니다.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하나님의 그 은혜의 경륜을 너희가 들었을 터이라 곧 계시로 내게 비밀을 알게 하신 것은 내가 먼저 간단히 기록함과 같으니 그것을 읽으면 내가 그리스도의 비밀을 깨달은 것을 너희가 알 수 있으리라."(엡3:2-4)

신약 시대의 설교는 목회자가 직통 계시를 받는 것이 아니고 성경 기록자가 성령의 영감으로 받아 간단하게 기록한 계시(비밀)의 말씀(성경)을 교역자가 전달하는 것이고(성언운반:聖言運搬), 이 때 성도가 성령의 영감으로 듣거나 또한 성경을 읽으면 성경 기록자가 받은 비밀(계시)을 깨달아 알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를 문서계시(文書啓示)라고 합니다. 그러나 구약시대에 선지자들이 받은 계시를 직통계시(直通啓示)라고 하는데 그 때는 성경이 없을 때이기에 하나님께서 직접 환상을 보여주시기도 하고, 음성을 들려주시기도 하고, 꿈으로 보여주시기도 하고, 천사를 보내 주시기도 하셨습니다.

3) 신약 시대의 예언
신약 시대에도 예언의 은사가 있습니다. 이는 구약시대와 같이 하나님의 계시를 대언하는 행위가 아니고 사람의 마음속의 숨은 일을 드러나게 하는 역사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 예언을 하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나 알지 못하는 자들이 들어와서 모든 사람에게 책망을 들으며 모든 사람에게 판단을 받고 그 마음의 숨은 일들이 드러나게 되므로 엎드리어 하나님께 경배하며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 가운데 계신다 전파하리라."(고전14:24-25)

그러므로 신약 시대에 예언의 은사를 받은 사람이라고 해서 미래의 일을 알아보는 예언(豫言)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더욱이 예언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말을 하는 것이므로 예언 기도란 있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예언의 집, 혹은 기도원에 예언 기도를 받으려 간다는 것은 올바른 신앙인으로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구약시대의 예언은 구약시대 예언자가 온 백성에게 외친 예언이고, 신약 시대의 예언은 개인의 마음속에 숨은 것을 드러나게 하여 개인의 회개를 촉구하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오늘 성도들 중 기독교의 예언(預言)을 무속 신앙의 예언(豫言)으로 착각하고 있는 분들이 많음은 참으로 안타깝고 개탄할 일입니다. 하루빨리 이 신앙의 혼미 상태에서 벗어나야 하겠습니다.

"내가 그들을 보내지 아니하였어도 그들이 내 이름으로 거짓을 예언함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렘 29:09).

성경에는 우리의 모든 상황에 적합한 원리가 될 수 있는 모든 말씀들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성령의 능력 가운데 선포하는 설교를 통해, 그리고 성령의 조명하심 속에서 받는 모든 말씀을 통하여 우리를 모든 상황에서 온전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위로와 권면과 책망을 풍성히 공급받을 수 있습니다. 성경의 정신과 원리를 우리의 삶에 적용하는 상담과 공부와 그 외의 다양한 말씀 사역을 통하여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격려와 위로를 주시고 계십니다. 그리고 또한 우리 각자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과 교통하는 지속적인 기도생활을 통하여 우리는 얼마든지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온전하여 질 수 있는 은혜를 공급 받을 수 있습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딤후 3:16).

우리에게 주어진 신.구약의 내용을 잘 알아 그 속에서 담긴 하나님의 뜻을 알면, 그리고 우리 속에 내주하시는 성령님과 친밀히 교통하면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설계하신 성경과 교회 시대의 기독교의 구조입니다.

성경의 선지자와 예언에 대한 언급은 당시 성경이 완성되어 보급되기 전의 교회를 위한 임시적 조치라는 사실을 생각지 못하는 것이다. 사도, 선지자, 예언을 언급하는 이러한 말씀들은 신앙의 교과서인 완성된 성경을 가지고 있지 못한 초대교회의 불안정한 상황을 염두해야만 이해할 수 있는 내용입니다.

4)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과 예언
교회사를 보면 이후 성경이 완성되어 교회에 주어지면서 사도와 선지자와 예언의 기능이 차츰 성경 속으로 흡수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성경을 해석하고 가르치고 적용하는 함으로서 예언이 필요하기 않게 되었고 자연히 예언자들은 사라졌습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는 1600년대 중반에 영국, 스코틀랜드, 아일랜드의 저명한 신학자 153명이 모여 5년 동안 연구하고 토로한 끝에 탄생된 매우 성경적인 신앙의 규범이다. 신사도운동의 사도, 선지자, 예언을 좋아하는 분들이 꼭 읽어야 할 내용이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1장 1항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께서는 여러 시대에 여러 방식들로 자신을 계시(啓示)하시고 그의 교회에게 그의 뜻을 선언하시기를 기뻐하셨고, 후에는 그 진리를 더 잘 보존하고 전파하기 위하여 그리고 육신의 부패성과 사탄과 세상의 악의(惡意)에 대항하여 교회를 더 굳게 세우고 위로하기 위하여 그 계시하신 내용을 온전히 기록되게 하셨다. 이것이 성경을 가장 필요하게 만드니,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에게 그의 뜻을 계시하시던 이전의 방식들이 지금 중지되었기 때문이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를 채택하였던 믿음의 선조들은 하나님께서는 진리를 더 잘 보존하기 위해, 그리고 인간의 부패함과 사탄의 간교함에 대항하여 하나님의 교회를 보존하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성경으로 기록하게 하셨다고 선언하였다. 그리고 다른 방법으로 그와 같은 하나님의 뜻(계시)을 전하는 일은 더 이상 없다고 선언하였습니다.

단순히 성경에 언급되어 있으므로 선지자와 예언은 지금도 유효하다고 주장하는 분들은 성경을 중심으로 좀 더 사고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5) 선지자의 예언은 믿음을 양육하는 말씀
사도행전에는 당시 선지자였던 사람들의 이름이 나옵니다. 사도행전 13장 1절에 의하면 바나바는 당시에 선지자로 인정되었던 사람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사도행전 15장 32절의 내용도 당시의 선지자를 이해하기 위한 중요한 본문으로 참고해야 합니다.

“유다와 실라도 선지자라 여러 말로 형제를 권면하고 굳게 하고”.

유다와 실라도 당시 교회에서 선지자로 인정받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당시 선지자들이 전하였던 예언의 성격을 알 수 있는 단서가 있습니다. “여러 말로 형제를 권면하고 굳게 하고”라는 부분입니다. 그들은 성령의 감동을 입고서 성도들에게 믿음을 장려하고 격려하는 말씀을 전파하였던 선지자들이었습니다. 초대교회의 성도들은 이러한 선지자들이 전하는 예언의 말씀을 통하여 많은 도움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선지자들의 예언의 중심 내용은 미래에 대한 예언이라기 보다는 성도의 삶과 신앙을 굳게하는 하나님의 말씀 그 자체였다고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사도행전 13장 1절에서 선지자라고 암시된 바나바를 통하여 초대 교회의 예언의 내용과 성격을 더욱 구체적으로 짐작할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에서 나타나는 바나바의 주된 특기는 전도와 양육이었습니다. 그는 초대교회의 인정을 받지 못하고 고향에 머물고 있던 바울을 발굴하여 사도의 사명을 성공적으로 감당하도록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후에 바울에게서 인정받지 못했던 마가를 양육하여 크게 성장시킨 사람입니다(행 15:39, 딤후 4:11).

바나바는 불신자들을 전도하고, 믿는 자들의 신앙을 탁월하게 양육하였던 말씀의 사역자였지 주로 미래에 대해서 예언하였던 예언자는 아니었습니다. 그러므로 선지자라고 암시되어 있는 바나바를 통하여서도 예언이 하나님의 말씀 사역이었음을 더욱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로 보건데 초대교회의 선지자들의 예언의 기능은 오늘 날의 교회의 설교의 기능과 근본적으로 유사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디모데전서 1:18절과 4:14절을 통하여서 당시 선지자들의 예언이 어떻게 실질적으로 교회에서 이해되고 있었는지를 살펴볼 수 있다. 이런 부분을 연구하면 당시 선지자의 예언이 교회와 성도의 신앙을 건강하게 자라도록 양육하는 하나님의 말씀이었음이 더욱 분명해집니다.

“아들 디모데야 내가 네게 이 경계로써 명하노니 전에 너를 지도한 예언을 따라 그것으로 선한 싸움을 싸우며”(딤전 1:18).

바울이 디모데에게 라고 하였습니다. 만일 여기서 말하는 예언이 디모데의 장래에 일어날 일에 대한 예언이었다면, 그 다음의 내용 “그것으로 선한 싸움을 싸우라”라는 부분과 잘 조화되지 않습니다. 그 예언의 내용은 디모데가 하나님의 일꾼으로서 갖추고 훈련되어야 할 중요한 부분들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이었다고 보아야 합니다. 그 말씀들을 디모데는 바울이나 다른 선배에게서 예언의 형태로 받았던 것입니다. 바울은 디모데가 그때 받은 하나님의 말씀의 권고를 따라 선한 싸움을 잘 싸워 이기고 사명을 잘 감당하기를 바랬던 것입니다.

“네 속에 있는 은사 곧 장로회에서 안수 받을 때에 예언으로 말미암아 받은 것을 조심없이 말며”(딤전 4:14).

여기서도 예언을 미래에 일어날 것이라고 알려준 내용으로 해석한다면 “조심 없이 말며”라는 부분과 조화가 되지 않습니다. 공동번역은 이 부분을 “예언해 준 말씀을 통해서 그대에게 맡겨진 직무를 등한히 하지 마시오”라고 번역하였습니다. 당시 디모데는 장로회에서 사역자로 세워지는 어떤 절차를 가졌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한편으로 초대교회는 예언으로 인하여 혼란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초대교회에는 사탄의 영에 미혹되어서 거짓 예언하는 사람들도 많았던 모양입니다. 사도행전 13:6절에는 바예수라는 유대인 거짓 선지자가 나오고, 베드로 사도 또한 당시에 거짓 선지자가 많이 출현했다고 기록했고(벧후 2:1), 요한 사도(요일 4:1, 계 2:20) 역시 거짓 선지자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6) 성경의 완성과 선지자의 직분
디모데전서 3:1-13절과 디도서 1:5-9절에는 선지자에 대한 언급이 없습니다. 그런데 신약의 선지자를 이해하는데 결정적인 또 다른 본문이 있습니다. 그것은 사도 바울이 장래의 교회의 교회의 다스림의 체제와 직분제도에 관해 언급한 디모데전서 3:1-13절, 디도서 1:5-9절입니다. 그곳에는 선지자에 대한 아무 언급도 없습니다. 예언이 어떻게 교회에서 활용되어야 할 것인지에 대한 언급도 일체 없습니다.

이 두 성경은 그가 아들과 같은 두 후배 목회자 디모데와 디도가 하나님의 소중한 교회를 어떻게 목양할 것인지를 위해 기록한 일종의 목회가이드였습니다. 건강한 교회와 목양을 위해 그가 가장 강조한 것은 교회의 건강한 직분자를 세우는 것이었습니다. 바울은 어떤 사람을 어떻게 훈련시키고 검증하여 직분자로 세울 것인가를 세밀하게 다루었습니다. 그런데 그 안에 선지자가 없습니다. 오늘 날의 목사에 해당하는 장로(감독)와 목사와 협력하여 교회를 섬기는 집사에 대해서만 언급했습니다.

그 자신이 고린도전서 12:28절과 에베소서 4:11절에서 교회를 위해 하나님이 선지자를 세우셨다고 분명히 말했으면서 왜 그들에 대해서는 더 이상 말이 없는 것일까? 다음 시대의 교회의 일꾼인 디모데와 디도에게는 어떻게 선지자를 세울 것인지? 디모데와 디도가 어떻게 선지자와 적절한 연관을 맺는 사역을 할 것인지? 에 대해 한 마디의 말도 없습니다. 바울이 디모데와 디도에게 “너희들이 훈련하여 세우는 장로(감독)와 집사 외에 하나님이 직접 세우는 선지자와 사도가 있을 터인데, 그들과 이러 이러한 관계를 잘 발전시켜야 한다!”라는 말이 한 마디 정도는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그 교회에 분란이 일어나지 않을텐데 그러나 바울은 전혀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

이는 바울이 사도 직과 선지자 직이 초대교회의 단회적 직분이었음을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장차 완성되어 교회에 보급될 성경이 교회 공동체의 절대적 교본이 될 것임을 내다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디모데후서 3:16절에서 기록한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라는 말씀을 실질적으로 믿었던 것입니다. 성경이 완성되면 선지자들과 사도들은 사라지고 다시 나타나지 않을 것임을 내다보면서 디모데와 디도에게 보내는 성경을 기록한 것입니다. 이후 교회의 역사는 그 사실이 증명하였습니다. 사도와 선지자와 예언이 급격하게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성경이 나타났음에도 선지자라는 사람들이 종종 출현했지만, 그들은 교회사의 주류가 되지 못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이 기본적으로 성경을 연구하기를 바라시고, 또한 그래야만 그 속의 말씀의 뜻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성령의 감동과 도우심을 받아 성경을 더욱 더 온전하게 이해하여 성도들의 삶의 상황에 맞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선포해야 합니다. 이것이 성경 시대의 신앙생활의 원리인 것입니다.

7) 마약과 같은 예언 중독
미래를 점치는 예언은 마약과 같고 소주와 비슷하여 우리의 건강한 신앙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건강한 영적성장을 훼방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영적성장은 결국 매일의 일상에 믿음이 박힘으로서 얻어지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비록 당장 마음을 시원케 하는 한 잔의 소주와 같은 예언에 의존하지 말고, 길고 고통스러울지라도 성경 속에서 고민하고 씨름하는 일상이 이어져야 합니다. 성경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뜻을 실제의 일상에 적용하는 것이 결국 영적인 실력이고, 그것이 없으면 영적인 성장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영성은 일상에서 나타납니다. 일상의 변화와 성장이 바로 영적인 변화이고 성장입니다. 제자훈련은 책상의 공부로만 되는 것이 아니고 성경을 부여잡고 고민하며 쉬지 않고 기도하는 일상의 분투를 통하여 진보합니다.
그런데 자칭 선지자들은 한방의 직통의 예언으로 끝을 내 줄 수 있는 것 같은 착각을 줍니다.

고통의 시간 속에 있는 사람들에게 주어진 또 다른 성취되지 않은 예언은 그들의 고통과 하나님에 대한 불신을 더욱 더하게 됩니다. 자살 성향의 내담자들은, 예언의 미성취를 자신 탓으로 돌리기 때문에, 예언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 더욱 자살 성향이 되었으며 자살을 기도하는 사람이 많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지도자 한 사람이 미혹을 당하면, 그에 따라가는 영혼들이 무수히 많습니다. 그래서 미혹하는 영들은 먼저 지도자를 먼저 공략합니다. 지도자가 선지자에게 미혹당하고 그들의 예언에 빠지면, 그 영향을 받는 많은 성도들이 무더기로 함께 넘어가게 됩니다.

지금은 성경시대입니다. 하나님의 뜻과 계시를 직통으로 받아 전하는 선지자들의 시대가 아닙니다. 성경에서 드러난 하나님의 모든 완전한 말씀들이 최종적인 법과 기준과 질서가 되었고, 그리고 우리 각자가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내주하시는 성령의 음성과 조명을 참고하여 신앙생활 하는 시대입니다. 하나님이 설계하신 현재의 기독교에는 선지자나 예언이 필요한 자리가 없습니다.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 내가 너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라”(마 7:22,23).

완성된 성경의 시대에 예언이라는 단어를 쓰는 것 자체가 혼란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우리 속에 거하시는 성령께서는 꿔다놓은 보릿자루 같은 분이 아니시고 살아계시고 우리와 교통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 분은 우리에게 오직 나만이 들 수 있는 내면의 음성을 주시는 분이고, 나만이 참고하는 주관적인 확신과 감동을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어떤 문제에 봉착했을 때에 성령께서 주시는 가이드와 터치하심을 느끼는 것은 사실이입니다. 이를 부인하는 신학은 보수신학이 아니고 죽은 신학입니다. 성령과 나와의 개인적인 교통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을 뭐라고 부를 것인지에 대해 온 세계 교회가 한 자리에 모여서 합의를 본 적은 없습니다.

당사자의 인생이 파괴되고, 그 교회가지 심히 고통을 당합니다. 이런 사례들은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구글에 검색하면 최고의 선지자라는 밥 존스 역시 얼마나 많은 거짓된 예언을 늘어 놓았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요사이에만 틀리는 것이 아닙니다. 밥 존스는 이미 80년대 초 마이크 비클을 만나 둘이서 깨소금 같은 영적신혼기를 만들어 갈 때부터 수 없는 거짓말 예언들을 남발했었습니다. 일일이 다 옮기는 것도 한심스럽습니다.
비교적 최근에 남긴 그의 허망한 거짓말 예언의 사례를 하나 소개하겠습니다. 밥 존스 선지자는 온 세상을 떠들썩하게 안수식을 거행하면서 사도가 된 타드 밴틀리를 양아들로 맞는 사람입니다. 타드 밴틀리가 잠시 동안 플로리다에서 부흥집회를 요란하게 인도할 때에 밥 존스는 그의 부흥운동이 장차 온 세상을 뒤 덮게 될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그러나 1년도 지나지 않아 타드 밴틀리는 여비서와 안타까운 상황에 빠져 있음이 드러나면서 순식간에 침몰하고 말았습니다. 소위 최고의 선지자라는 사람의 예언이 이 모양이었습니다.

스스로 선지자라 칭하는 모든 사람들은 거짓 선지자들일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비록 어떤 선지자가 어떤 때에는 맞는 예언을 한두 번 내어 놓았을지라도 이는 사실입니다. 어쩌다가 맞는 예언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단순히 맞느냐? 틀리느냐? 로 따지자면 모든 예언이 맞을 가능성은 언제나 50%는 됩니다. 어린 아이의 장난 예언도 맞을 가능성은 50%입니다.

그러므로 누구의 예언이 몇 번이나 맞았었는가? 로 판단하지 말아야 합니다. 과연 이 시대에 선지자의 예언이 있을 이유가 있는가? 라는 신학적인 접근만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만일 하나님이 세우신 참 선지자가 있다면 그의 예언은 항상 100% 성취되어야 합니다.

“만일 선지자가 있어서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한 일에 증험도 없고 성취함도 없으면 이는 여호와의 말씀하신 것이 아니요 그 선지자가 방자히 한 말이니 너는 그를 두려워 말지니라.”(신 18:22).

8) 성경의 사람
하나님이 우리에게 지극히 원하시는 것이 무엇일까요? 우리 모두가 내주하시는 성령의 밝은 조명을 받아 성경을 바르게 읽고 올바로 이해하여야 합니다.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뜻을 지혜롭게 우리 각자의 상황에 잘 적용하여야 합니다. 그리함으로 건강한 그리스도의 삶을 구현하여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 드릴 수 있습니다.

이것을 위해 우리가 힘써야 할 일은 선지자들을 찾아다니고, 그들이 주는 예언을 핸드폰으로 녹음하고서 두고두고 다시 들으면서 분석하고, 그 내용을 붙들고 기도하는 것이 아니고 스스로 늘 기도하여 성령의 밝은 조명을 받아 어리석고 미련한 마음에서 벗어나 신령해지고, 성경을 더욱 가까이 하여 하나님이 뜻하시고 바라시는 것들을 명확하게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뜻대로 살아보기 위해 고민하고 투쟁해야 합니다. 이것이 영성입니다. 이것을 돕는 것이 진정한 제자훈련입니다.

바울은 그 환상을 보고 무조건 그쪽으로 선교의 방향을 틀지도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러라”라고 하였습니다. 그 전까지 아시아 지역으로 진출하고자 수 없이 노력했지만 그때마다 좌절 당했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그 환상을 보았습니다. 바울은 여러 정황을 보고서 하나님께서 자신의 선교사역을 마게도냐로 인도하신다는 결론에 이르렀고, 그 사실을 자신의 판단력과 분별력으로서 인정한 것입니다. 여기서 바울이 예언이나 환상을 무조건 믿지 말고 잘 분별하라고 가르쳤던 사람이었다는 사실이 확증되는 것입니다.

바울이 선지자의 예언을 무작정 믿지 않고 분별하였다는 명확한 증거가 또 있습니다. 사도행전 21장에서 아가보라는 선지자가 등장합니다. 그는 이미 사도행전 11장에서 큰 흉년이 있을 것이라고 예언하였던 적이 있는 당시에 사람들에게 신뢰받는 선지자였습니다. 그가 바울에게 예루살렘으로 가면 포로가 되어 이방인들에게 재판을 당할 것이라고 예언하면서 바울에게 예루살렘으로 가지 말라고 권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의 예언을 듣지 않고 예루살렘으로 갔고, 결국 로마까지 끌려가서 이방인들의 재판을 받았습니다. 그 와중에 복음이 로마에까지 더 힘차게 전파되었습니다.

이 비밀을 아가보 선지자는 전혀 몰랐던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미 다 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바울이 영적인 분별력과 성숙한 판단력을 발휘하지 않고 선지자 아가보의 예언만을 따랐다면 지금 세계의 역사는 어찌 되었을까요?

성경이 완성되지 않았던 시절에도 선지자의 예언은 참고 사항이었고 분별의 대상이었습니다. 예언이 절대적인 순종이 대상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하물며 그리스도인의 삶의 목표와 원리와 정신이 다 드러나 있는 성경이 주어졌습니다. 그리고 우리 속에 내주하시면서 우리 몸을 성전으로 삼으신 성령 하나님을 모시고 살고 있습니다. 새삼스럽게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 선지자를 찾아다니고 예언을 귀담아 듣는다는 것은 시대를 역행하는 것입니다.

9) 예언은 세미나로 배우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배워 깨닫는 것
성경시대의 성도의 영성은 내주하시는 성령의 조명을 받아 어리석고 허망한 마음에서 벗어나 신령한 마음이 되어서 성경을 통해 이미 드러난 하나님의 뜻을 자신의 삶에 적용하는 것입니다. 불신자들은 돈과 쾌락과 온갖 육신의 정욕을 인생의 성공으로 여깁니다. 그들은 성령의 조명을 받지 못해 마음이 부패하고 생각이 미련하고 허망해진 상태에서 벗어나지를 못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성령의 새롭게 하심을 입었으므로 기도할수록 어두운 마음이 밝아지고 어리석은 생각이 신령해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성경의 원리와 정신을 자신의 삶 속으로 끌어들이게 됩니다.

또 다른 은사의 하나인 예언은 반드시 선지자의 전유물이 아니라 은사를 받은 사람에게 있는 기능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개인의 앞날의 운명을 미리 말하기보다는 성경을 통하여 하나님의 완성된 계시를 드러냄으로 그것을 듣는 믿지 않는 자나 어리석은 사람들이 회개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여 교회의 덕을 세우는 데 있습니다.

선지자나 예언은 하나님의 은사임으로 결코 훈련을 통해서 또는 세미나를 통해서 전수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성경의 권위와 하나님의 이름을 빙자한 속임수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더욱이 온갖 자랑과 개인의 권위를 높임과 광란과 무질서와 비이성적인 그리고 물질의 착취가 있다면 그것은 그리스도의 명령을 어기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의 덕을 세우지 않고 교회를 어지럽히고 신앙인의 이성을 파괴시키고 정욕적이라면 베드로가 경고한 거짓 선생들에 해당되는 것입니다.

9) 거짓 선지자들의 출현
1980년대 말에 대예언자(great prophet)로 알려진 폴 케인은 술중독과 마약으로 말년을 보내다가 세상을 떠났으며, 신사도들의 대부 C.P. 왜그너가 '사도'로 임명한 테드 해거드 목사(미국 뉴라이프교회 전 담임목사, 전 전국복음주의협회/NAE 회장) 동성연예자로 교회를 사임하게 되었고, 밥 존스는 거짓 예언과 여신도 성추문으로 출교 되었으며, 패트리 샤킹은 밥존스의 양딸로 입양되었는데 후에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되었으며 타드 벤트리는 부흥사로 활동하면서 술중독증에 빠지고 여자 신도들과 성관계로 부인과 이혼하였고, 하이디 베이커는 47명의 죽은 자를 살렸다고 주장하였으나 지금까지 한 건의 증거도 제시하지 않고 있는 등 대부분의 신사도운동가들에게서 신학적인 것은 물론이고 영적 및 도덕적 문제들이 즐비하게 노출되고 있습니다.
신디 제이콥스나 밥 죤스와 같은 신사도 운동가들은 “예언이 틀릴 수도 있다”고 하는데, 하나님이 주신 예언이라면 틀릴 수 없어야 한다. 마이크 비클은 “거의 대부분의 예언이 틀린 경우도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그들의 주장은 자신들의 예언이 거짓된 예언임을 스스로 드러나는 것과 같습니다.

개인적 신앙적 체험은 누구나 할 수 있다. 하지만 직접적으로 하나님이 사도들에게 말씀하셨던 것같이 자기들에게 말씀하셨다고 하며, 이것이 신약성경의 계시와 동일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자신들이 받은 직통계시를 성경의 수준으로 올려 놓는 것으로서, 위험한 사상일 뿐만 아니라 성경의 완전성과 종결성을 부인하는 것이다. 그들은 직통계시를 통하여 무당과 같은 개인적 신후사를 예언하지만 그것은 성도들로 하여금 신비주의에 빠지게 하여 말씀을 떠난 신앙생활로 이끌어가는 위험한 행위이다.

10) 거짓 선지자들에 대한 경고
오늘날 성경이나 신학에 대한 무지에서 기인한 자칭 선지자들이 많습니다. 이들을 향한 성경의 경고를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민간에 또한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났었나니 이와 같이 너희 중에도 거짓 선생들이 있으리라 저희는 멸망케 할 이단을 가만히 끌어들여 자기들을 사신 주를 부인하고 임박한 멸망을 스스로 취하는 자들이라 … 저희가 탐심을 인하여 지은 말을 가지고 너희로 이를 삼으니…“(벧후 2:1~19).

예레미아 5장 31절을 보십시요. “예언자들은 거짓으로 예언을 하며, 제사장들은 거짓 예언자들이 시키는 대로 다스리며, 나의 백성은 이것을 좋아하니 마지막 때에, 너희가 어떻게 하려느냐?”

성경에서 미래의 점을 치는 행위는 절대 금지된 일입니다(신 18:10-12, 렘 14:14).

신명기 18장 20-22절 “만일 어떤 선지자가 내가 전하라고 명령하지 아니한 말을 제 마음대로 내 이름으로 전하든지 다른 신들의 이름으로 말하면 그 선지자는 죽임을 당하리라 하셨느니라.”

거짓 예언을 따른 사람도 유죄라고 성경은 경고합니다.

예레미야 20장 1-6절 “....너와 네가 거짓 예언을 하여 들린 네 모든 친구도 일반이리라 하셨느니라.”

마태복음 7장 21-23절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마7:21-23) 그 외에 성경을 찾아 보십시오.

예레미야 23장 16절~17절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에게 예언하는 선지자들의 말을 듣지 말라 그들은 너희에게 헛된 것을 가르치나니 그들의 말한 묵시는 자기 마음으로 말미암은 것이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온 것이 아니니라 항상 그들이 나를 멸시하는 자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평안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며 또 자기 마음의 강퍅한대로 행하는 모든 사람에게 이르기를 재앙이 너희에게 임하지 아니하리라 하였느니라.”

예레미아 23장 22절 “그들이 만일 나의 회의에 참예하였더면 내 백성에게 내 말을 들려서 그들로 악한 길과 악한 행위에서 돌이키게 하였으리라.”

열왕기상 22장 20-22절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누가 아합을 꾀어 저로 길르앗 라못에 올라가서 죽게 할꼬 하시니 하나는 이렇게 하겠다 하고 하나는 저렇게 하겠다 하였는데 한 영이 나아와 여호와 앞에 서서 말하되 내가 저를 꾀이겠나이다. 여호와께서 저에게 이르시되 어떻게 하겠느냐 가로되 내가 나가서 거짓말 하는 영이 되어 그 모든 선지자의 입에 있겠나이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너는 꾀이겠고 또 이루리라 나가서 그리하라 하셨은즉”

예레미아 23장 32절,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거짓 몽사를 예언하여 이르며 거짓과 헛된 자만으로 내 백성을 미혹어 그의이 도하게 하는 자를 내가 치리라 내가 그들을 보내지 아니하였으며 명하지 아니하였나니 그들이 이 백성에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에스겔 22장 28-31절 “그 선지자들이 그들을 위하여 회를 칠하고 스스로 허탄한 이상을 보며 거짓 복술을 행하며 여호와가 말하지 아니하였어도 주 여호와의 말씀이라 하였으며 이 땅 백성은 강포하며 늑탈하여 가난하고 궁핍한 자를 압제하였으며 우거한 자를 불법하게 학대하였으므로 이 땅을 위하여 성을 쌓으며 성 무너진 데를 막아서서 나로 멸하지 못하게 할 사람을 내가 그 가운데서 찾다가 얻지 못한고로 내가 내 분으로 그 위에 쏟으며 내 진노의 불로 멸하여 그 행위대로 그 머리에 보응하였느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고린도후서 11장 13-14절 “저런 사람들은 거짓 사도요 궤휼의 역군이니 자기를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자들이니라 이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라 사단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디모데 후서 4장 3-4절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좇으리라 5. 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 근신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인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

계시록 2장 2절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거짓 선지자들은 미혹의 영에 사로잡히기 때문에 양심에 가책없이 거짓 예언을 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멀지 않아 지옥에 가는 것도 모르는 채 예수님이 세운 교회들을 우롱, 농락, 기만하고 있으니 그들의 거짓 예언과 사역에 미혹당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최근 많은 기도원과 교회들이 신사도식 집회를 한 후에, 성도들이 줄을 서서 자신의 장래에 대해서 예언을 받는 경우가 있으며, 심지어 교인들의 이름이나 생년월일, 혹은 세례날짜를 적어오면 장래 일을 점쳐주는 무당과 같은 곳도 있습니다. 주로 개인의 신후사를 예언해 주는 경우입니다.

신명기 18장 14절 “네가 쫓아낼 이 민족들은 길흉을 말하는 자나 점쟁이의 말을 듣거니와 네게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런 일을 용납하지 아니하시느니라.”

신명기 18장 10-11절 “그 아들이나 딸을 불 가운데로 지나게 하는 자나 복술자나 길흉을 말하는 자나 요술하는 자나 무당이나 진언자나 신접자나 박수나 초혼자를 너의 중에 용납하지 말라”

요즘처럼 사회 전체가 불안한 상태에 있으며 많은 사람들이 여러 면에 있어서 박탈감을 느끼게 되는 경우는 예언에대한 호기심을 더욱 갖게 됩니다. 박탈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이 세상적 방법으로는 박탈당한 자신의 것들을 되찾을 수 없고 그러므로 초월적인 것으로부터 그것을 보상받고 싶은 마음의 소원이 있게 됩니다. 비성경적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에게 먹혀 들어가면 그것은 이단화의 첫발이 됩니다.

11)기독교의 주변화
기독교는 기독교회가 처해 있는 사회 내에서 이탈하여 산속으로나 혹은 수도원에 묻혀서 고행하는 단체가 아닙니다. 그 반대로 사회 속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는 사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한마디로 하면 모든 일에 있어서 하나님의 자녀들 혹은 백성들로서의 모범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기독교회의 가르침이나 주장하는 바가 설득력을 갖게 되며, 주변 사람들로부터 존중을 받게 됩니다.
그것이 선교적 사명을 완수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반대로 그렇지 않으면 기독교회는 예수님의 말씀처럼 맛을 잃은 교회가 되며 사람들에게 짓밟힐 뿐입니다. 즉 기독교회는 사회 속에서 그 존재의 가치를 점점 잃게 되면서 사회의 중심 축에서 밀려나와 주변을 맴도는 단체로 변합니다. 이러한 현상을 주변화 또는 보이지 않는 종교화라고 합니다. 그런데 위에서 예를 든 그러한 예언 운동과 같은 비이성적이며, 광란적이며, 마술적이며, 무속적이며 비윤리적인 운동이 전통적인 기독교의 이름 하에서 퍼져나간다면 그것들이 주변 사람들에게 그려놓은 인상은 쉽게 지워지지 않을 것입니다.

12) 신약시대의 예언은 말씀의 신탁
구약에는 주로 선지자들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선지자들의 입에 말씀을 주어 예언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신약에서는 다릅니다.

히브리서 1장 1-2절 “옛적에 선지자들로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에게 말씀하시던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신약성경은 선지자들을 통하여 말씀한 계시가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하나님의 계시입니다. 그 분의 생애자체가 계시요 그 분이 하신 말씀이 계시입니다. 신약성경은 선지자들이 예언한 내용들이 전혀 없고 사도들을 통하여 신약성경을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하셨는데 이것이 하나님의 계시로 인정이 된 것입니다. 이전에도 언급했듯이 한국교회는 아직도 맡깉다는 의미의 예언(預言)을 미래를 점친다는 예언(豫言)으로 알고 있는 성도들이 많습니다.

로마서 3장 2절 “범사에 많으니 첫째는 저희가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음이니라.”

말씀을 신탁받아 하나님의 뜻을 가르치고 선포하는 것이 것이 예언입니다. 성경을 문자적으로 해석하면 오류에 빠집니다.

고전14장 33-35절 “하나님은 무질서의 하나님이 아니시요 오직 화평의 하나님이시니라 모든 성도가 교회에서 함과 같이 34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 그들에게는 말하는 것을 허락함이 없나니 율법에 이른 것 같이 오직 복종할 것이요 35 만일 무엇을 배우려거든 집에서 자기 남편에게 물을지니 여자가 교회에서 말하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라.”

신약시대에 와서는 목회자가 성경 말씀을 통해 성령의 영감을 받아 깨달은 말씀을 증명하는 것을 설교라고 합니다.

에베소서 3장 2-4절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하나님의 그 은혜의 경륜을 너희가 들었을 터이라 곧 계시로 내게 비밀을 알게 하신 것은 내가 먼저 간단히 기록함과 같으니 그것을 읽으면 내가 그리스도의 비밀을 깨달은 것을 너희가 알 수 있으리라.”

신약 시대의 설교는 목회자가 직통 계시를 받는 것이 아니고 성경 기록자가 성령의 영감으로 받아 간단하게 기록한 계시(비밀)의 말씀(성경)을 교역자가 전달하는 것이고(성언운반:聖言運搬), 이 때 성도가 성령의 영감으로 듣거나 또한 성경을 읽으면 성경 기록자가 받은 비밀(계시)을 깨달아 알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를 문서계시(文書啓示)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신약 시대에 예언의 은사를 받은 사람이라고 해서 미래의 일을 알아보는 예언(豫言)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더욱이 예언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말을 하는 것이므로 예언 기도라는 말은 말자체가 성립이 않됩니다. 따라서 예언의 집, 혹은 기도원에 예언 기도를 받으려 간다는 것은 올바른 신앙인으로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사도행전 21장 10-11절 “여러 날 있더니 한 선지자 아가보라 하는 이가 유대로부터 내려와 우리에게 와서 바울의 띠를 가져다가 자기 수족을 잡아매고 말하기를 성령이 말씀하시되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이 이같이 이 띠 임자를 결박하여 이방인의 손에 넘겨주리라 하거늘 우리가 그 말을 듣고 그곳 사람들로 더불어 바울에게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지 말라 권하니 바울이 대답하되 너희가 어찌하여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 받을 뿐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 하니 저가 권함을 받지 아니하므로 우리가 주의 뜻대로 이루어지이다 하고 그쳤노라.”

예언은 분별하여 받아 들이라는 말씀입니다. 성령이 예언하여 계시하였으면 바울이 순종해야 하는데 그런데 어찌하여 마을을 상하게 하느냐고 말하였을까요. 영분별의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예언자의 능력으로 스스로 미래에 일어날 일을 알아 맞추는 예언(豫言)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일러주시는 말씀을 말한 것 뿐입니다. 다시 말하면 구약시대의 예언은 구약시대 예언자가 온 백성에게 외친 예언이고, 신약 시대의 예언은 개인의 마음속에 숨은 것을 드러나게 하여 개인의 회개를 촉구하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고린도 전서 14장 24-25절 “그러나 다 예언을 하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나 알지 못하는 자들이 들어와서 모든 사람에게 책망을 들으며 모든 사람에게 판단을 받고 그 마음의 숨은 일들이 드러나게 되므로 엎드리어 하나님께 경배하며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 가운데 계신다 전파하리라.”

오늘 성도들 중 기독교의 예언(預言)을 무속 신앙의 예언(豫言)으로 착각하고 있는 분들이 많음은 참으로 안타깝고 개탄할 일입니다. 하루빨리 이 신앙의 혼미 상태에서 벗어나야 하겠습니다.

신명기 13장 1-5절 “너희 중에 선지자나 꿈 꾸는 자가 일어나서 이적과 기사를 네게 보이고 네게 말하기를 네가 본래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을 우리가 좇아 섬기자 하며 이적과 기사가 그 말대로 이룰찌라도 너는 그 선지자나 꿈 꾸는 자의 말을 청종하지 말라 이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가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는 여부를 알려하사 너희를 시험하심이니라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순종하며 그를 경외하며 그 명령을 지키며 그 목소리를 청종하며 그를 섬기며 그에게 부종하고 그 선지자나 꿈 꾸는 자는 죽이라 이는 그가 너희로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시며 종 되었던 집에서 속량하여 취하신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배반케 하려 하며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행하라 명하신 도에서 너를 꾀어내려고 말하였음이라 너는 이같이 하여 너희 중에서 악을 제할찌니라.”

선지자가 기사와 표적을 보이고 알아맞출지라도 청종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신디 제이콥스나 밥 죤스와 같은 신사도 운동가들은 “예언이 틀릴 수도 있다”고 하는데, 하나님이 주신 예언이라면 틀릴 수 없어야 합니다. 마이크 비클은 “거의 대부분의 예언이 틀린 경우도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그들의 주장은 자신들의 예언이 거짓된 예언임을 스스로 드러나는 것과 같습니다.

개인적 신앙적 체험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직접적으로 하나님이 사도들에게 말씀하셨던 것같이 자기들에게 말씀하셨다고 하며, 이것이 신약성경의 계시와 동일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자신들이 받은 직통계시를 성경의 수준으로 올려 놓는 것으로서, 위험한 사상일 뿐만 아니라 성경의 완전성과 종결성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직통계시를 통하여 무당과 같은 개인적 신후사를 예언하지만 그것은 성도들로 하여금 신비주의에 빠지게 하여 말씀을 떠난 신앙생활로 이끌어가는 위험한 행위입니다.

13) 예언은 말씀을 깨달은 자는 누구나

신약시대의 예언은 정경이 확정됨으로서 예언된 말씀들을 잘 해석하여 가르쳐서 책망하고 깨닫게하고 권면하고 위로하는 사역입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의 예언에 대한 바른 정의입니다. 그러므로 예언은 누구든지 할 수 있습니다. 신약시대에 와서는 목회자가 성경 말씀을 통해 성령의 영감을 받아 깨달은 말씀을 증명하는 것을 설교라고 합니다.

에베소서 3장 2-4절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하나님의 그 은혜의 경륜을 너희가 들었을 터이라 곧 계시로 내게 비밀을 알게 하신 것은 내가 먼저 간단히 기록함과 같으니 그것을 읽으면 내가 그리스도의 비밀을 깨달은 것을 너희가 알 수 있으리라.”

신약 시대의 설교는 목회자가 직통 계시를 받는 것이 아니고 성경 기록자가 성령의 영감으로 받아 간단하게 기록한 계시(비밀)의 말씀(성경)을 교역자가 전달하는 것이고(성언운반:聖言運搬), 이 때 성도가 성령의 영감으로 듣거나 또한 성경을 읽으면 성경 기록자가 받은 비밀(계시)을 깨달아 알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를 문서계시(文書啓示)라고 합니다.

고전14장 31절 “너희는 다 모든 사람으로 배우게 하고 모든 사람으로 권면을 받게 하기 위하여 하나씩 하나씩 예언할 수 있느니라.” 이 말씀을 보다 더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 성경 원문에 따라 직역해보겠습니다. “왜냐하면 너희 모든 자들이 한 사람씩 예언하도록 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모든 자들이 배우고 모든 자들이 권면받도록(직역)”

이런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이제는 예수께서 누구시며, 그분의 하신 말씀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예언할 수 있습니다. 예언은 깨달은 말씀을 맡아 깨달은 사람이 말씀 선포를 통해 책망하고 위로하고 권면하는 것이 예언입니다.(고전 14장 3절)

신약시대의 예언은 말씀을 맡은자들이 성령의 감동을 통해서 증거하는 설교와 같은 것입니다.







펌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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